달서구 지명 유래 10 - 강창, 곶감샘, 구민지(救民池)
강창
소재지 : 달서구 파호동 391-4
옛날에는 강이나 바다를 이용하여 중앙의 경창까지 조세를 운반하였는데 하천의 강류 또는 적당한 곳에 고장인 강창을 설치하고 일정한 기간 내에 소속 읍의 조세를 모아 경창으로 운송하는 강창을 설치했다.
이 강창에는 수운판관을 두어 주, 군의 조세를 모아 보관했다가 다음해 2月부터 조운을 시작하여 가까운 곳은 4月까지 먼 곳은 5月까지를 기한으로 경창에 수송 상장하게 했다.
달서구 파호동 일대의 강창이란 마을은 바로 이러한 강창이 있었던 곳으로 지금은 매운탕을 주로 하는 식당이 밀집된 곳으로도 유명하다.
곶감샘
소재지 : 달서구 송현2동 1911번지
현 송현초등학교 부근의 자연 부락명은 구암리(九岩里)었다.
구암리(九岩里)에는 송현지(松峴池)라는 큰 연못이 있어(현 송현여중고자리) 이 물로 농사를 지었으나, 송현지의 남서쪽에 있는 논에는 (현 송현초등학교 부근의 자리) 현 월성아파트 정문 부근에 있는 큰 샘물로 물을 공급하였다.
이 샘은 사시사철 맑은 물이 흐르며 그 규모가 넓고 깊어 5∼6개의 징검다리가 있을 정도였다.
어느 더운 여름날 대구로 곶감을 팔러 오던 곶감 장수가 솔재(松峴)를 널어오다가 너무나 갈증이 나서, 곶감을 진 채로 샘물을 마시려 하다가 그 샘에 빠져 죽었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으며, 곶감 장수가 빠져 죽은 샘이라 하여 "곶감샘"으로 불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구민지(救民池)
소재지 : 달서구 두류1동 1185번지
현 내당초등학교 서쪽 800m 지점에 구민지(救民池(구민지)라는 못이 있었다.
그 규모는 가로 200m, 세로 300m, 가장 깊은 곳이 5m 정도의 제법 큰 못이었다.
이 못의 물을 이용하여 약 2만평(6.4ha)의 천수답에 물을 대어 논농사를 지었다.
그러나 1971년 대구시 도시 계획에 의하여 못을 메우고 주택지로 변경시켜서 현재 두류 1, 2동의 주택지가 되었다.
이 못이 축조된 시기는 조선시대 중기이며, 안땅골(內塘山(내당산)) 마을 사람들이 중심이 되어 못을 막아 식량 증산에 힘썼다.
그 당시 한발이 심해서 안땅골(內塘山(내당산)) 사람들은 춘궁기에는 식량이 부족해서 생계가 곤란하였다.
이 못을 일컬어 빈민을 구제하는 못이라 하여 "구민지(救民池)"라 명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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