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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서구 지명 유래 8 - 진천동(辰泉洞), 파산동(巴山洞), 파호동(巴湖洞 : 파산), 호림동(狐林洞, 홀림동)

종영 2012. 2. 29. 15:58

달서구 지명 유래 8 - 진천동(辰泉洞), 파산동(巴山洞), 파호동(巴湖洞 : 파산), 호림동(狐林洞, 홀림동)

 

 

진천동(辰泉洞)

    진천동은 신라 달구화현(達句火縣)에 속하였고, 고려 때는 수창군(壽昌郡)에, 조선 선조 때 대구현 월배면에, 1914년에 오복동과 인흥면(仁興面)의 송정동(松亭洞)을 합하여 진천동이라 하고 달성군 월배면(月背面)에 편입하였다.

    옛날 진천동 일대에는 4개의 자연부락(오복촌(五福村), 새악단(新村), 송정동(松亭洞), 용천동(龍泉洞))이 있었는데, 그 중에서 오복촌(五福村)이 오늘의 진천동(辰泉洞)이다.

   원래 이 곳에(약700년전) 500세대가 살고 있다 하여 오백(五百)이라 하였는데, 이 오백이 오복(五福)으로 변음하여 오복촌(五福村)으로 불리다가 다시 진천(辰泉)으로 불려지게 되었다.

   "진천(辰泉)"이란 말은 이 마을에 있는 샘에서 유래하였는데, 이 샘은 수량이 풍부하고 물 맛이 좋아 널리 알려졌으며 미리샘(辰泉 : 일명 텃샘, 참샘, 수심이 1m이상)이라 부르게 되었다. 약 50년 전 우물을 개수하다가 샘 둑에서 큰 기동만한 향나무 뿌리가 발견되어 모두 신기하게 여겼다.

 

파산동(巴山洞)

    파산동의 옛 이름은 머무동 또는 머무강창이라고 하는데, 머무동은 금호강으로 올라오던 소금배가 머무는 동네라 하여 생긴 이름이다. 강창은 조선시대에 세운선(稅運船)이 머무던 곳으로 파산동에도 설치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는데, 여기에서 유래되어 이 지역이 강창으로 불려지게 되었다.

    파산동(巴山洞)이라는 유래는 일제시대에 일본인들이 지은 동명인데 파산동(巴山洞)과 파호동(巴湖洞)사이에 돌무덤에서 많은 뱀들이 살았다고 한다.

   강창에는 조개가 많이 났었는데 뱀과 조개의 싸움이 치열했다고 하는데 알 수 없다.

   파산(巴山)이란 명칭은 파산 밑에 있다 하여 이렇게 불렸는데, 1914년에 금회동(琴回洞)을 합하여 파산동이라 해서 달성군 성서면에 편입하였다.

 

파호동(巴湖洞 : 파산)
 
   1270년경에 한씨(韓氏), 박씨(朴氏)가 이곳을 개척하여 범어, 강창이라 불렸는데, 범어라는 것은 강에
물고기가 많이 뛰어올라 뜬다고 하여 칭한 이름이다.

 

호림동(狐林洞, 홀림동)

   대구부 성서면이 있던 지역으로 1914년에 호림동이라 하여 달성군 성서면에 편입하였다.

   들 한복판에 숲이 홀로 우거져 있다 하여 500여년 전에는 홀림으로 일컬어졌다.

   그 후 1730년경 마을 앞 당산 느티나무 밑을 지나던 과객이 홀(笏)자가 좋지 못하다고 하여 여우전설이 있는 동네라는 뜻으로 호(狐) 자를써 호림((狐林)으로 개칭하였다고 한다.

   여우 주둥이인 지점의 동네 앞에 소, 말 공동묘지를 좌우로 설치하였는데 여유는 부패한 고기를 좋아한다고 하여 가축공동묘지를 만들었다고 하며 그후로 이 마을이 잘사는 부자마을이 되었다고 한다.

    

   조선시대 대구에서 부산 마산으로 통하는 관문으로 낙동강 수로를 따라 부산에서 교역물이 들러왔으

면 호림동이 하역 작업이 가장 쉬운 지점이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