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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구지명유래 4 - 대신동(大新洞)

종영 2012. 3. 14. 08:57

 

대신동(大新洞) 

 

 

 

   대신동(大新洞)는 조선시대 평양, 강경과 더불어 전국 3대 시장의 하나로 꼽히던 큰장이 있었다.  매월 2日 7日, 12日 17日, 22日 27日 등 5일장으로 1920년 서문 밖인 천황당(天皇堂)못자리로 옮긴 뒤부터 시장이름을 서문시장 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당시 천황당(天皇堂) 못은 성내 한량들이 즐겨 찾던 놀이터고 봄가을이면 인근 부녀자들의 놀이터로 각광을 받던 곳이었다. 주변 구릉에서 흘러내린 맑은 물에 의해 저절로 만들어진 자연 호수로 지금의 동산병원 앞길과 대신로타리, 대신파출소 앞길, 옛 계성중고등학교 담을 따라 위치한 건어물상 일대가 물에 잘긴 자리였다.  주변은 참나무 숲이 무성하던 곳이었으나 1920年 못을 메우고  큰장을 이곳으로 옮겼다.

    해방 후에도 오랫동안 큰장의 명예를 누리던 서문시장이 그 영예를 잃어간 것은 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상권이 분산된 탓도 있겠으나, 옛날  천황당(天皇堂) 못에 실연 당하고 투신 자살한 처녀의 원혼에 의해 큰불이 잦은 관계라고 믿는 상인과 주민이 많은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아직도 서문시장은 그 위세를 자강하며 도매상으로 대구권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다.

   이 못을 주변으로  새로운 동네가 형성되었는데, 이 동네의 이름을 짓기 위하여 "큰 장"이란 말에서 "큰 대(大)"와   "새로 생긴 동네"라는 말에서 "신(新)"을 합쳐 대신동이라 불렀다. 대구부 서상면의 지역인데 1914년에 전동, 후동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신정(新町)이라 하였다가 1946년에 대신동으로 고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