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동(校洞)
처음 향교가 있었던 곳의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으나 조선시대 이태조 7년에 동문밖 고성에 세운 향교가 불타버리자, 정종 7년에 부동으로 옮겨지었다고 추측된다.
향교가 있던 자리라 하여 이렇게 불려졌다. 향굣골 또는 향교동이라 하였다. 대구부 동상면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용덕리 일대를 병합하여 동본정(東本町)이라고 하다가 1947年 4月 1日 부터 향굣골의 이름을 따서 이렇게 불려 졌다.
이후 1백 90여년간 이곳에 있던 향교가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것을 1599년 관찰사 한준겸과 부사 김구정, 홍사 임상의가 현 달성공원(達成公園) 자리에 새로 건립했는데 당시만 해도 그곳은 외곽지대였으므로 뱀과 빈대등이 들끓어 성현을 모시기에는 불결하다 하여 1605년 관찰사 류영순이 고통자리로 옮겼다. 그후 1933년 현재의 향교자리(중구 남산동735번지)로 이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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