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구벌 알기/남구

남구 지명 유래 1 - 대명동(大明洞)

종영 2012. 2. 29. 16:34

대명동(大明洞) 
 
    대명동(大明洞)은  명나라 장수 두사충(柱師忠)에서 인유된다. 두사충(柱師忠)은 임진왜란이 일어나
자 명나라 제독 이여송과 함께 조선을 도우러 왔다.

   그는 이여송의 일급 참모로서 작전 계획 수립에 참여했고, 조선 군과의 합동작전을 할 때도 조선군과 전략 전술상의 긴밀한 협의를 하는 아주 중요한 위치에 있는 장수였으며 그의 활동과 공적은 높이 평가되고 있다.

   그는 당시 수군을 총괄하던 충무공 이순신 장군과 아주 친했다.

   임진왜란이 평정되자 고향으로 돌아갔다가 정유재란이 발발하자 그의 매부인 진린도독과 함께 다시 우리 나라로 왔다. 이때 두사충은 충무공과 다시 만나게 되었다. 충무공은 명장수가 수 만리 길을 멀다 않고 두 번씩이나 나와 도와주자 감격하여 두사충(柱師忠)에게 한시를 지어 마음으로 표했다.

 

     북으로 가면 고락을 같이하고

     동으로 오면 죽고 사는 것을 함께 하네.

     성남쪽 타향의 밝은 달 아래

     오늘 한 잔 술로써 정을 나누세.

 

    그 후 정유재란도 평정되자 고국에 돌아가지 않고 조선에 귀화했다.

    두사충이 귀화하자 조정은 그에게 대구 시내 경상감영공원 일대를 주고 거기서 살도록 해 주었다.

    그 뒤 두사충이 받은 땅에 경상감영이 옮겨오게 되자 그는 자기가 받은 땅을 모두 내어놓고 계산동으로 옮겨 편안한 생활을 계속하게 되었다.  계산동 주위에 많은 뽕나무를 심었고 그 때문에 이 지역을 뽕나무 골목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수만리 떨어진 타국에서 누리는 행복이었기에 고향에 두고 온 부인과 형제들 생각에 눈물 흘린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이에 두사충(柱師忠)은 최정산(最頂山, 현재의 대덕산, 앞산) 밑으로 집을 옮겨 고국인 명나라를 생각하는 뜻에서 동네 이름을 대명동(大明洞)이라 붙이고 단을 쌓아 매월 초하루가 되면 고국의 천자를 향해 배례를 올렸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