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서구 지명 유래 17 - 월암동지석묘(조암 : 租岩), 자래수도랑 , 작촌(鵲村)
월암동지석묘(조암 : 租岩)
소재지 : 달서구 월배1동(월암)441-2
구마고속도로에서 동쪽으로 보면 마을 앞에 5개의 커다란 바위가 들판에 우뚝우뚝 서 있는데 그 모양이 마치 볏가마니를 닳았다하여 이 바위의 이름을 조암(租岩)이라 한다.
조암은 약 300年전 마을의 재난을 막고 번영을 기원하는 마음으로 마을 사람들이 세웠다고 한다.
배가 떠나는 형태인 이 땅에 돛을 단다는 뜻으로 처음엔 일곱 개의 바위를 세웠으나 그 중 하나는 벼락을 맞아 윗부분이 달아났으며 또 하나는 개간할 때 없어져서 지금은 5개 만 남아 있다.
사람들은 이 바위가 넘어지거나 기울어지면 마을에 소가 죽는 등 화가 미치고 액운이 닥친다고 믿었다. 그래서 돌이 넘어지면 마을 사람들이 힘을 모아 다시 세웠고, 정월 대보름이나 추석엔 부녀자들이 돌 주위에 촛불을 켜고 행운과 번영을 빌어 왔는데. 지금도 이 풍습이 남아 있다.
자래수도랑
소재지 : 달서구 월암동 일원
월배의 조암(租岩 - 옛날에는 염암이라 불렀다 함)들의 북편 중앙으로 역사가 오래된 도랑이 흐르고 있다. 이 도랑은 성서에서 흘러 내려오는 작은 도랑과 대구시의 성당쪽에서 흘러 내려오는 도랑들, 모두 세 개의 작은 도랑물이 합쳐져 두걸 도랑을 거쳐 낙동강으로 들어간다.
옛날에는 낚싯군들이 각 처에서 모여 고기를 낚았으며, 가릿군들이 가리를 울러 메고 떼를 지어 고기를 잡으려고 모여들기도 하였다. 그런데 물고기 외에 자라도 나왔다고 한다.
예로부터 약용으로 쓸 자라가 필요한 사람들이 도랑에 와서 자라를 많이 잡아갔다. 그래서 자라가 많이나는 도랑, 자라가 많이 살고 있는 도랑으로 이름이 퍼졌다.
이 도랑을 옛날부터 자래(자라)수도랑으로 불렀다고 한다
작촌(鵲村)
소재지 : 달서구 본리1동 일원
1829년 성수인 이규노가 이주한 후 많은 까치들이 몰려와 곡식더미에 접을 짓고 살았다하여 까치마을 즉 작촌(鵲村)이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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