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서구 지명 유래 1 - 대곡, 갈산, 감삼
대곡동(大谷洞)
대구부(大邱府) 인홍면(仁興面)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의 송정동 일부와 합쳐 달성군 화원면에 편입되었다가 1973년 달성군 월배면으로 소속이 되었다.
원래 "한실"이라 불리어진 이곳은 "갈밭(葛田)"과 "새악단(新村)"으로 나누어져 오다가 대곡동이 되었다.
"한실"이란 큰골, 즉 골이 깊고 크다는 뜻이다. 한실의 "한"의 뜻은 크다, 넓다로 한자로 표기하면
"大"이고, "실"의 뜻은 고을, 마을이란 뜻으로 한자의 "谷"이다. 즉 한실은 큰 마을 이라는 뜻이므로 한자로 표기하여 대곡이 되었다.
갈산동(葛山洞 : 갈뫼)
이 마을 뒷산에 칡나무가 많아 "칡뫼"로 불리어 졌는데, 칡뫼가 갈뫼로 다시 갈산으로 바뀌게 되었다고 한다.
비가와도 주위에 큰산이 없어 논에 댈 물이 부족하여 이를 귀먹은 사람에 비유해서 "먹뺑이"라고 부른다.
마을 중앙선 길을 경계로 호림, 갈산으로 갈라지면 갈산동에 속해 있으며 호림과 집단을 이룬다하여 섶동이라 부른다.
대구부 감물천면에 속했던 지역으로서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갈산동이라고 해서 달성군 성서면에 편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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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삼동(甘三洞) 감삼동의 지명이 대한 유래는 두 가지의 설화가 있다.
1) 첫 번째 얘기 지금으로부터 약 300여년 전 어느 날 원님(현감)이 지역을 지나가다가 시등(枾登, 감나무에 감이 달려 있는 산등성이- 현 감삼동(甘三洞) 69-1 번지 일대 )에 있는 감나무에 달린 붉은 감을 보고 그 탐스러움을 감탄하였다. 이에 마을에서 인사차 나온 주민 대표가 감을 원님께 대접하면서 마을 이름을 지어 달라고 부탁하였더니 감이 매우 달고 맛이 있어 세개나 먹었으니 감삼동(甘三洞)으로 부르게 했다는 데서 유래한다. 예로부터 이 지역인대가 와룡산(臥龍山)에서 낮은 산 능선이 남쪽으로 뻗어 감삼동(甘三洞) 마을 한 가운데서 끝나는 지형을 이루었고 낮은 산에는 소나무들이 무성하게 자랐고 산등성이와 비탈진 땅에는 여기저기에 감나무들이 자생하여 감이 많이 .나는 곳으로 알려져 왔다 1970년 이후에도 빈터의 땅에서 군데군데 감나무들을 볼 수 있었다.
2) 두 번째 얘기 감삼동(甘三洞)의 땅모양을 보면 북쪽에서 남쪽으로 낮은 산줄기가 길게 뻗어 마을 한 가운데서 끝나는데 바로 이곳의 땅 모양이 세 장군이 태어날 형상이었다. 이런 말이 널리 퍼지게 되면 도리어 마을 사람들이 해를 입기 쉽다하여 이 얘기를 숨기기 위해 그 부근에 샘이 세 곳에 솟아날 것이라고 하였다 한다. 그런 얘기가 있자 얼마 안되어 이 마을에는 샘이 세곳이 생겨 여름가뭄에도 그 샘물은 마르지 않았다고 하여 감삼동(甘三洞)이라 부르게 되었다. 샘이 있었던 세 곳의 위치는 감삼동(甘三洞) 148-6, 190-2, 284-3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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