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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기구 박물관

종영 2012. 2. 29. 13:41

 

 농기구 박물관

 

'어! 곁에 이런 박물관이….’
박물관이라고 하면 대영박물관, 루브르 박물관,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등 거대한 뭔가를 떠올릴 법하다. 하지만 눈을 조금만 돌려보면 곳곳에 널려 있는 것도 박물관이다. 퀼트, 농기구, 염색도구, 한약재, 카메라, 의료기기, 교육·역사 등 종류도 다양하다.

본격적인 나들이 철을 맞아 가족이 함께 대구 시내 곳곳에 ‘숨어 있는’ 이색박물관을 찾아 나서 보자. 대부분 개인이 수십 년간에 걸쳐 수집한 소장품들로 돼 있는 이들 박물관은 규모는 작지만 진귀한 전시품들로 가득해 자녀들의 체험교육장으로 손색이 없다.

 

◇농기구 박물관

대구시 수성구 매호동의 한 비닐하우스 농원. 겉에서 보기엔 일반 꽃집과 다를 바가 없는데 ‘민속 꽃 농원 박물관’이라는 간판이 생뚱맞다. 주인을 따라 조금 더 들어가자 희한한 공간이 펼쳐진다. 10평 남짓한 비닐하우스 벽과 천장엔 발 디딜 틈 없이 모양도 제각각인 농기구들이 빼곡하게 걸려있다.

짚으로 만든 멍석, 소쿠리, 가마니, 물지게, 들저울, 베틀, 도리깨 등 요즘은 구경조차 할 수 없는 옛 물건들이 즐비하다. 주인 김규식(58)씨는 “30년 정도 모았는데, 한 1천여 점은 될 것”이라고 했다.

‘이것이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신기하게 농기구들을 어루만지고 있는 기자에게 질문세례가 이어진다. 난생 처음 보는 물건도 많은데 쓰임새를 알리가 만무하다. 궁금증이 천지인 곳이다.
그래서 이곳엔 아쉬운 점이 하나 있다. 보는 사람들이 알기 쉽게 설명서 하나 써놓지 않고 무질서하게 쌓아만 놓은 것. 김씨는 “조만간 더 넓은 터를 찾아 박물관 형태로 만들 계획”이라고 했다.

김씨에 따르면 수집품들은 논·밭에서 쓰이는 농기구, 광·부엌에서 쓰이던 생활 공예품으로 크게 나뉜다. 쟁기, 호미, 갈퀴, 논메기, 디딜방아, 물레, 베틀, 다듬잇돌, 지게, 탈곡기, 인분통, 소달구지…. 가깝게는 수십 년, 멀리는 100여년 이상 전의 것도 있단다.

같은 농기구라도 지역에 따라 모습과 재질이 다른 점을 발견하는 것도 이곳의 흥밋거리이다. 도리깨만 봐도 경상도에서는 물푸레나무로, 전라도에서는 대나무로 만들었다. 쟁기도 경상도 것은 쟁깃날이 평평하지만 강원도 것은 굽은 것이 많다. 선조들은 그 지역의 전통과 민속에 따라 농기구의 모양도 달리 만든 것이다.

몇 년 전부터 김씨의 박물관에는 입 소문을 타고 찾아오는 손님들이 점점 늘고 있다. 하루에 50여명 쯤. 이날도 한 노부부는 다듬잇돌을 만져보며 추억에 잠기고, 아이들의 눈엔 신기함으로 가득한 모습이었다. 053)791-0003.

 

◇박물관장 김규식씨

“땅을 터전으로 살았던 우리 조상들의 농경문화 유산을 후손들에게 보여주고 싶습니다.”

1970년대부터 농기구를 하나둘씩 모아 지금의 큰 재산으로 불렸다는 김규식(58·사진)씨는 2003년 대목수 분야에서 문화재 기능장으로 선정된 장인이다. “노후에 농사를 지어야겠다는 생각으로 남들이 버리는 물건에 손을 대기 시작했지요.” 목수 일을 하면서도 그에겐 농사꾼의 아들이라는 생각이 강했던 탓이다.

김씨가 녹슨 철제 사이렌의 손잡이를 몇 바퀴 돌리자 ‘우~웅’하는 소리가 제법 크고 길게 울린다. 전기 사이렌에서는 품을 수 없는 추억이 묻어난다. “이 녀석들 수집한다고 발품깨나 팔았지요.” 좋은 물건이 있다면 그는 멀리 강원도, 전라도까지 가서 농기구들을 얻어왔다.

30여년의 세월이 지나면서 그에겐 1천여 점의 농기구들이 자식 같다. 김씨는 “우연히 이곳을 찾은 인근의 아파트단지 주민들이 내 자식들을 보며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는 것을 보고 있으면 신이 난다”고 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김씨의 농기구 박물관을 찾는 사람이 늘면서 내방객들을 맞는 김씨의 마음은 안타까움과 미안함이 반반이다. 볼거리야 많지만 장소가 좁아 농기구들을 보기 좋게 전시하기가 어려운 탓이다. 장소도 좁지만 어디에 쓰는 물건인지 설명서 하나 만들어놓지 않아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냥 구경만 하고 발길을 돌리기 십상.

“언제부턴가 조상들의 지혜와 손때가 묻은 이 농기구들을 후손들에게 길이길이 보여줘야겠다고 결심했지요. 조만간 충분한 공간을 확보해 민속품들을 분야별로 전시, 조상들의 삶과 정신을 돌아보는 기회로 삼을 계획입니다.”

사진=박순국편집위원 tokyo@imaeil.com

정욱진기자 penchok@imaeil.com  작성일: 2005년 04월 2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