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구벌 알기/대구 이바구

김세호가 중수한 대구읍성

종영 2010. 2. 4. 10:27

 

김세호가 중수한 대구읍성

 

민응수가 축성을 한 지 134년 만인 1870년 3월 대구읍성을 다시 중수하게 된 것은 대원군의 군사정책 때문이었다. 병인양요 등으로 열강과의 군사적 충돌이 잇따라 일어나자 대원군이 각처에 군량을 저축케 하고 성곽 수리를 명한 것이다. 당시 경상도 관찰사겸 대구부사로 있던 김세호金世鎬가 맡은 이 공사는 최초 축성보다 더 시일이 걸린 8-9개월간이나 계속되었다. 그 때의 대구읍성은 허물어지기 일보직전이었다. 여첩女牒의 대부분이 부서졌고 4곳의 대문과 누각은 썩어 기우뚱하게 넘어지는 등 볼품없이 낡아 있었다.

 이 때의 성곽수리에서 상부에 설치된 여첩은 모두 개축하였으며, 성벽을 더 높게 쌓고 동서남북 네 문의 누각을 고쳐 짓고 성벽위에 새로 네 개의 누각을 세웠다. 동쪽은 정해루定海樓, 서를 주승루籌勝樓라 했으며, 남을 선은루宣恩樓, 북을 망경루望京樓라 하였다. 흔적을 찾아 볼 수 있는 누각은 사진으로만 남아있는 망경루와 서장대(주승루)가 있다.

그러나 김세호가 7만 전錢이란 거액으로 힘들여 중수한 대구읍성은 36년 만인 1906년 당시 관찰사 서리署理로 있던 박중양朴重陽이 일본 거류민단居留民團의 철거 건의를 받아들여 흔적도 없이 헐어 버리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