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마을의 수구막
소재지 : 북구 연경동 일원
태봉에서 북서쪽으로 1㎞쯤의 위치에 있으며 동래 정씨 임하공파 중심으로 20여 호로 구성되어 있다.道德(도덕)이라는 마을 이름은 옛부터 도덕을 숭상한다고 해서 그렇게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조선조 선조의 둘재 아들인 광해군이 태어나자 성산과 명당을 찾다가 연경동 뒷산에 그 태를 안치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봉우리 밑의 마을을 태봉이라 하고, 왕자의 태실이니 만큼 식물이 웅장하고 차려 했으며 석상이 아주 훌륭했다고 한다.
그런데 , 연경동 뒷산에 태실이 생기고 난 뒤부터 그 윗마을 도덕마을에서는 괴이한 일이 일어났다. 그것은 마을의 과년한 처녀나 시집 온 새색시들이 봄만 되련 태봉쪽을 하염없이 바라 보다가는 끝내 미쳐 마을을 도망치는 일이 자꾸 생기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일이 해를 거듭하며 계속되자 마을에서는 큰 고민거리가 생겼다. 여자들이 바람이 나서 마을을 떠난다는 것은 마을 체면과도 관련이 되고 또 마을 자체내에서도 곤란한 점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리저리 고민을 하다가 무당을 불러 굿을 해 보니 태봉의 석상한테 반해서 마을 여자들이 미친다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왕실의 석물을 없앨 수는 더더욱 없는 것이라 궁리 끝에 마을 앞에 소나무를 심기로 했다.
이곳은 도덕마을에서 보면 태봉이 바로 눈앞에 보이는 위치에 있다. 그리고 나서는 마을 전체가 소나무를 가꾸기 시작했고 그 숲의 이름을 "수구막" 또는 "수구맥이 "라고 부르게 되었으며 그 후로는 여자가 성적으로 미쳐 마을을 떠나는 일이 없어졌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마을에서는 매년 정월 보름날 온 동네 사람들이 모여 그 숲에서 풍악을 올리고 한 해 동안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기인하고 또 고마움을 전했다고 한다.
이러한 풍습은 1960년대 후반까지 있어 왔으며 그때까지 울창했던 소나무 숲이 솔잎 혹파리와 태풍으로 한꺼번에 죽어 버렸다고 한다. 지금은 두 그루가 남아 있는데 한 그루는 말라 죽고, 한 그루만 남아 삼사백년 마을의 비밀을 안고 태봉을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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