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구벌 알기/달서구

달서구 서원,정각, 누각 3 - 용강서원(龍岡書院 金海 許씨)|

종영 2012. 2. 29. 16:17

용강서원(龍岡書院 金海 許씨)

     소재지 : 달서구 이곡동 16 (선원마을)

 

 

    이 서원은 1804년(純祖 4, 순조)에 창건하여 金海人(김해인) 許得良(허득양)과 復良(복양) 兩兄弟位(양형제위)를 奉享(봉향)하다가 1864년 서원철폐령에 의해 훼철되었던 것을 그후 120년만인 1986년에 복원하여 위 兩位(양위)와 9代祖(대조)인 高麗門下侍中(고려문하시중) 諡忠穆(시충목) 許有全(허유전)을 正位(정위)에 追配(추배) 致享(치향)하였다.

    忠穆公(충목공, 1243生)은 高麗(고려) 忠烈王(충렬왕)때 監察大夫(감찰대부)로, 忠宣王(충선왕)때는 驚洛君(경락군)으로 封爵(봉작)되고 忠肅王(충숙왕)이 江陵君(강릉군)으로 있을 때 翊善師博(익선사박)로 있다가 王(왕)의 卽位元年(즉위원년)에 端城守節功臣號(단성수절공신호)를 받고 拜政丞(배정승)하였다.

    許得良(허득양, 1597生)의 자는 國弼(국필), 호는 尙武軒(상무헌), 李适(이괄)의 亂(난)에 禁軍別將(금군별장)으로 武功(무공)을 세워 折衝將軍副護軍(절충장군부호군)이 되었다. 丙子胡亂時(병자호란시)는 從弟(종제)인 復良(복양)과 더불어 倡義(창의)하여 전공을 세우니 白馬將軍(백마장군)이라고 부르고 副摠管(부총관)에 제수되었으나 南漢山城(남한산성)부근에서 戰死(전사), 이어 復良(복양)도 立功死節(입공사절)하였다.

    許復良(허복양, 1602生)의 자는 國補(국보) 호는 洛庵(낙암), 병자호란때 從兄(종형)인 得良(득양)과 함께 出戰(출전), 雙嶺(쌍령) 전투에서 적의 괴수 3명을 생포하는 등 전공을 세워 訓練院都正(훈련원도정)에 제수 되었으나 남한산성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1812년(純祖 12, 순조), 尙武軒公(상무헌공)은 資憲大夫(자헌대부) 兵曹判書行壽善大夫五衛都摠府副摠管(병조판서행수선대부오위도총부부총관)으로, 洛庵公(낙암공)은 壽善大夫(수선대부) 兵曹暫參判(병조참판)겸 同知義禁府使訓練院都正(동지의금부사훈련원도정)이 贈職(증직)되었다. 境內(경내)에는 忠烈祠(충렬사)를 비롯하여 修德軒(수덕헌), 思義堂(사의당), 崇賢堂(숭현당), 龍岡齋(용강재), 忠穆公碑(충목공비), 院庭碑(원정비), 世居庄碑(세거장비)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