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구벌 알기/대구 이바구

대구읍성의 4누각樓閣 (장대)

종영 2010. 2. 4. 10:43

 

대구읍성의 4누각樓閣 (장대)

 

대구읍성의 모서리에 세워진 누각은 망루望樓라 불렸다. 그 중 북편성곽과 서편성곽이 만나는 지점에 망경루望京樓가 있었다. 조선조 고종7년, 1870년 경상도 관찰사겸 대구도호부사로 있던 김세호가 대원군의 군사정책에 따라 허물어진 대구읍성을 보수하며 세운 것이다.  관찰사 김세호는 이때 망경루를 비롯해 성 위 4개소에 누각을 세웠는데, 동을 정해루定海樓라 했고, 서를 주승루籌勝樓라 했으며, 남을 선은루宣恩樓, 북을 망경루라 하였다. 대구 읍성을 허물면서 4개의 누각도 자연 헐리게 되었는데, 이 중 망경루만 경상감영 입구였던 관풍루와 함께 원형대로 현재의 달성공원 안으로 옮겨졌다. 그 후 건물이 너무 오래되어 1969년 대구가 달성공원을 정화하면서 다시 복원하는 것을 전제로 설계도를 만든 뒤 해체하였다. 기둥은 모두 두리기둥을 사용했고 지붕은 팔작지붕이었다. 동산의 3·1운동기념관에 복원한 대구읍성 배치도를 보면, 망경루는 현재의 북성로와 서성로가 교차되는 모퉁이에 위치했으며, 주승루는 현재의 약령서문 자리, 선은루는 중앙파출소 앞 공원 자리, 정해루는 국민은행 동성로지점 우측편에 위치했다고 적혀 있다. 그러나 서장대는 현재의 합천 약업사 사거리에 있었다.

 

4누각은 정리하자면 4장대의 누각에 달린 현판의 이름으로 추정할 수 있다.

북장대 - 망경루

서장대 - 주승루

동장대 - 정해루

남장대  -  선은루

 

현재 사진으로 남아있는 2개의 장대는 북장대와 서장대다.

북장대(망경루)와 남성로 약전골목에 있는 누각이 동일함으로 서장대(주승루)로 본 것이다.(편집자주)

 

 

● 대구읍성의 4장대

성내 지형 중 지휘 관측이 용이한 성벽 위에는 장군의 지휘소에 해당하는 곳들이 있었다고 하며, 우리말에 ‘장대같이 높다’라는 말의 기원이 되고 있다. 동장대東將臺, 서장대, 남장대, 북장대가 있었으며, 동학교주 최제우가 사형당했다는 ‘대구장대大邱將臺’라는 명칭도 있지만 정확한 위치는 파악되지 않는다. 하지만 관덕정(현 동아쇼핑) 연병장에서 처형당했다는 설 등을 종합해 보면 중앙파출소 근처에 있었던 남장대로 추정한다. 장대의 용도는 읍성 안팎을 훤히 들여다보며 경계하고 적군의 침략시 지휘소 용도였으나 누각이었으므로 편액을 망경루, 정해루, 주승루, 선은루 이렇게 달았을 수도 있다.

 

대구읍성이 있었을 당시의 대구지도와 향토역사관, 3·1운동역사관, 향토연구회의 대구읍성모형을 살펴보면 4성문, 2소문, 4망루까지는 위치가 표시되어 있지만 4장대는 표시가 되어있지 않다. 장대將臺와 망루望樓는 같은 장소일 수도 있다는 것을 추정된다. 그러나 각기다른 장소에 설치되어 있었을 수도 있다. 1907년 박중양이 대구읍성을 해체하면서 보고한 사료를 바탕으로 추정해 보면, 동장대가 정해루라는 이름으로 북성로와 동성로가 만나는 대우빌딩 앞이었고, 서장대는 주승루라는 편액을 달고 합천약재사 사거리에 있었을 것이다. 남장대는 남성로와 동성로가 만나는 중앙파출소 앞 공원에 선은루라는 이름으로 서 있었고, 북쪽을 바라보고 있었던 망경루는 자연스레 북장대의 역할을 하였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