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에만 있는 보물
대구에만 있는 보물
대구. 이 도시 이름에서 무엇을 떠올리시나요?
사과를 떠올릴 분도 있겠고, 찜통 더위를 떠올릴 분도 계실겁니다.
`식탁 위의 하이에나'인 저같은 사람은 뭉티기나 막창을 떠올립니다.
대구는 묘한 도시입니다. 같은 대도시 부산만 해도 많은 사람들이 찾아가는 여행지입니다만, 대구는 이 도시에서 숙박하며 돌아보는 사람이 극히 적은 곳입니다. 바다도 없고 유명한 산도 없으니 굳이 따로 대구만 보러갈 필요가 있겠냐 생각하기 마련인데, 팔공산 주변의 그 수많은 문화유적들을 생각하면 아쉽습니다.
대구는 대구만의 분위기가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도시들과 다른 점이 제법 많습니다.
우선, 유턴 표시 등을 찾기 어렵습니다. 대구지역 운전자가 다른 도시에 가면 부지불식간에 위반을 많이 하게 된다는 농담도 합니다.
그리고 골목문화가 발달했습니다. 특정 업종이 한 거리에 몰려있는 곳이 유독 다양합니다. 수제화 골목, 돼지 골목, 막창 골목 , 깡통 골목 같은 곳들이 곳곳에 있습니다. 그리고 업종 밀집도가 무지하게 강하다는 점도 흥미롭습니다. 서울 낙지 골목이라고 하면 낙지집이 다른 업종보다 좀 더 많은 정도인데, 대구 골목들은 한 업종 가게들이 거의 거리의 100%를 채울 듯 모여있습니다.
그러면 대구의 볼거리는?
많은 분들이 떠올리는 명소는 도시의 규모와 유명세에 견줘 별로 없습니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요?
대구에는 대구에서만 볼 수 있는 건축물들이 있습니다. 한국에 건너와 기독교를 전파했던 선교사들의 집들이 근대의 흔적으로 남아있고, 크기는 작아도 아름다운 계산성당이 있습니다. 계명대 캠퍼스도 있고요.
그런데 정말 대구에서만 볼 수 있는 건축물이 있습니다. 다른 곳에는 없는 특별하고 독특한 건물입니다.
대구 남산동과 계산동 부근은 대구가톨릭교구가 안착한 곳입니다. 신학교와 성당 수녀원 등이 가톨릭 신학 타운을 이루는 이 곳에 가톨릭 신자들만 보기에는 아까운 건물이 숨어있습니다..
이 신학타운의 중심인 대구가톨릭대학교 안으로 들어가면 먼저 성 유스티노 신학교 건물이 맞이합니다. 계산성당 명동성당 등을 떠올리게 하는 아름다운 고전 벽돌건물입니다.
이 신학교 건물은 1914년 지었습니다. 벽돌이란 소재를 그리 쓰지 않았던 우리나라에는 저런 벽돌 건물을 짓는 법이 없어서 중국인 기술자들이 지었습니다. 서울의 명동성당 등 당시 가톨릭 초기 건물들이 모두 그랬듯 이곳 건물들도 중국 기술자들의 작품입니다
이 건물은 학교답게 깁니다. 대건중고등학교 건물로 쓰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예전에는 이 건물말고도 여러 건물들이 길게 늘어서 있었는데, 헐어버리고 새 건물을 지었습니다. 냉난방 등 지금 쓰기에는 어려움이 많아서일텐데, 오래된 건물들이 그렇게 사라진 것은 안타깝습니다. 저렇게 긴 건물이 계속 줄지어선 모습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새로 지은 건물도 저 건물과 분위기를 맞추기 위해 붉은 벽돌로 지었지만 아쉽기 짝이 없습니다.
이 건물을 지나 언덕쪽으로 가다보면 드디어 오늘의 목적지가 나옵니다. 높게 조성된 단 위쪽으로 가면 드디어 이 건물이 눈앞에 펼쳐집니다.
사전 지식이 없이 사진만 보면 `개선문인가?' 착각할 정도로 큰 아치가 인상적입니다. 종교 시설 특유의 엄숙함과 장엄함, 그리고 공간을 채우는 묘한 느낌이 어우러집니다.
정면에서 본 모습입니다. 너른 잔디밭이 건물을 더욱 돋보이게 합니다. 이런 형식의 건물은 대한민국에선 대구에서만 볼 수 있습니다.
좀 더 앞으로 갑니다. 커다란 아치 속에 담긴 모습이 눈에 들어옵니다.
이 건물은 `성모당'입니다. 성모 마리아를 기리는 곳입니다. 건물 안은 바위 동굴처럼 꾸몄고, 위에 성모상이 있습니다.
이 성모당은 1917년 가톨릭 초대 대구교구장이었던 프랑스 사람 드망주 신부가 만들었습니다. 앞서 보신 성 유스티노 신학원 등 가톨릭 건물들을 지은 다음, 이 건물로 대구 가톨릭 단지의 정점을 찍었습니다.
왜 이런 건물을 지었을까요? 거기에는 사연이 있습니다.
이 성모당은 프랑스 루르드 지방에 있는 한 이야기에서 시작됩니다.
루르드는 프랑스의 시골 동네입니다. 150여년 전인 1858년 2월11일, 루르드의 강가 바위 동굴 앞에서 베르나데란 소녀가 땔감을 줍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소녀 앞에 갑자기 성모 마리아가 나타난 것입니다. 성모는 소녀에게 "나는 원죄없이 잉태되었다"고 말하고 "성당을 지으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이런 일이 18번이나 일어났습니다.
처음 소녀의 말에 마을 사람들은 비웃었지만 성모 발현은 거듭되었습니다. 놀란 교황청은 과연 기적인지 조사에 나섭니다. 그리고 소녀의 이야기는 공식 기적으로 인증받았습니다. 베르나데가 발견한 샘물에 팔을 담근 뒤 못쓰던 팔을 고친 사람이 나오는 등 기적은 이후에도 이어졌습니다.
성모의 말씀대로 사람들은 성당을 지었고, 이후 루르드는 전세계 가톨릭 신자들이 몰려드는 순례 성지가 됩니다.
바로 이 곳입니다.
그리고 100년쯤 전, 프랑스를 떠나 지구 반대편 조선이란 나라에 건너온 드망주 신부는 루르드의 성모께 소원을 빌었습니다.
"주교관과 신학교를 건설하고, 주교좌 성당을 증축할 수 있게 해주신다면 주교관을 위해 예정된 대지 안에서 가장 좋은 장소에 루르드의 동굴과 유사한 동굴을 세워드리겠습니다."
머나먼 이국 나라에 자신의 종교를 전하기 위해 신부는 그 소원을 허락해달라고 소망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바람은 정말 이루어졌고, 그는 루르드의 동굴을 그대로 재현한 이 성모당을 지었습니다.
그리고 건물 위에 ‘1911 EXVOTO IMMACULATAE CONCEPTIONI 1918’이라고 썼습니다. 1911은 대구교구가 처음 생긴 해이고, 1918은 드망주 신부가 교구를 위하여 하느님에게 청한 3가지 소원이 모두 이루어진 해입니다. ‘EXVOTO IMMACULATAE’는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님께 바친 허원에서’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성모당은 아름답습니다. 건축물도 아름답고, 그 안에 담긴 이야기도 아름답습니다.
덕분에 대구에는 한국 어디에도 없는 묘하고 아름다운 건물이 남았습니다.
대구 성모당은 가톨릭 신자가 아니라도 누구나 가볼만한 곳입니다.
종교 시설들은 종교는 달라도 다들 신성한 장소 특유의 아름다움과 감동을 선사합니다. 건축에서 가장 감동을 추구하는 것이 종교 건축물입니다. 그 느낌은 다르면서도 같고, 같아보이면서도 다릅니다.
저 또한 성모당은 진정한 건축의 아름다움은 건물 자체의 디자인이나 화려함이 아니라 `장소 만들기'에서 나온다는 진리를 새삼 가르쳐줍니다.
번잡한 대로에 저 건물이 있다면 감동은 훨씬 줄어들었을 것입니다. 드망주 신부는 가장 좋은 곳을 골라 건물만이 아니라 그 주변을 잘 가꿔 건물과 장소가 하나가 되게 했습니다. 간단하면서도 명쾌한 잔디밭, 가장 원형적인 디자인의 성모당이 하나가 되어 만들어내는 분위기는 실로 일품입니다.
성모당은 분명 대구의 보물입니다.
by 구본준 http://blog.hani.co.kr/bonbon/